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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은 언제부터
먹었을까요?

  • 고대 마야, 아즈텍족은
    카카오 콩으로 음료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카카오나무 열매의 신선하고 새콤한 섬유질만 먹고 쓴맛의 씨는 버렸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씨를 이용한 음료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영양가 높고 원기 회복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황제에게만 바쳐지는 귀한 음료가 되었습니다. 아즈텍의 왕 몬테 즈마는 '신의 음식 이라 불리는 이 걸쭉하고 쓴 음료를 아주 아주 좋아해서 하루에 50잔을 넘게 마셨다고 합니다. 말린 카카오는 갈색 금'이라 불리며 화폐로도 쓰였는데, 서양 호박은 카카오 열매 4개, 토끼는 10개, 노예 한 명은 100개로 교환 되었습니다.

  • 초콜릿은 1502년 콜롬버스가 최초로 유럽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알지 못했대요.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카카오 콩 음료의 가치를 발견해 병사들의 피로 회복제로 이용했습 니다. 1526년 코르테스가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에게 초콜릿 음료를 바침으로써 신들의 음식 카카오가 유럽을 거쳐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거죠. 중세 유럽에서는 황실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어 초콜릿 전용 카페와 클럽, 황실 전용 초콜릿 제조실, 초콜릿 장인까지 생겨났답니다.

  • 처음 초콜릿은 마시는 음료 형태였습니다.

    지금의 초콜릿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유럽에 알려진 후에도 200여 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어요. 1679년 초콜릿파우더가 첫 선을 보인 후 1828년 네덜란드인 반 호텐은 카카오 원두로부터 코코아 버터 일부를 착유하는 탈지기술을 개발하여 현재 우리가 즐기는 고체 형태의 초콜릿을 만드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고, 1876년 스위스의 다니엘 피터스가 쓴 맛을 덜어주는 밀크 초콜릿을 개발하면서 초콜릿 제조업이 더욱 발전했습니다. 이어 19세기 말 초콜릿 입자 를 곱게 만드는 정제장치가 발명되어 더욱 향상된 품질의 초콜릿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 고대 아즈텍부터 유럽까지 황실과 귀족이 좋아했던 초콜릿은 우리나라에도 황실의 간식으로 첫 선을 보였습니다.

    대한제국 황실에서 양식 조리와 외빈 접대를 담당한 손탁에 의해 황실에 처음 소개되었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초콜릿을 맛본 사람은 명성황후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초콜릿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연합군인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면서 보급품으로 흘러나온 초콜릿부터였습니다. 우리기술로 처음 만든 초콜릿은 1968년이었습니다. 롯데웰푸드는 1975년 가나 초콜릿 등의 초콜릿을 만들기 시작했고 1983년에는 초콜릿과자 빼빼로를 생산하게 되었답니다.

초콜릿의 종류는
어떻게 될까요?

  • 초콜릿

    코코아가공품류에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 등을 가하여 가공한 것으로 코코아고형분 함량 30% 이상
    (코코아버터 18% 이상, 무지방 코코아고형분 12% 이상)인 것

  • 밀크초콜릿

    코코아가공품류에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 등을 가하여 가공한 것으로 코코아고형분을 20% 이상(무지방 코코아고형분 25% 이상)
    함유하고 유고형분이 12% 이상유지방 2.5% 이상)인 것

  • 화이트초콜릿

    코코아가공품류에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 등을 가하여 가공한
    것으로 코코아버터를 20% 이상 함유하고, 유고형분이 14% 이상
    (유지방 2.5% 이상)인 것

  • 준초콜릿

    코코아가공품류에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 등을 가하여 가공한 것으로 코코아고형분 함량 7% 이상인 것

  • 초콜릿 가공품

    견과류, 캔디류, 비스킷류 등 식용가능한 식품에 1~4의 초콜릿류를
    혼합, 코팅, 충전 등의 방법으로 가공한 복합제품으로서
    코코아고형분 함량 2% 이상인 것

드림카카오

초콜릿 기념일, 발렌타인 데이

발렌타인 데이는 3세기경 로마의 사제이자 의사였던 밸런티노 성인을 기리는 날입니다. 고대 로마의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주변 국가와 전쟁을 하기 위해 젊은 남자들의 결혼을 금지해 버렸습니다. 당시 로마의 사제 밸런티노는 이 '결혼금지령' 을 어기고 사랑하는 연인의 결혼을 집행해 주었는데, 사랑을 이루지 못한 젊은 연인들이 밸런티노 사제에게 몰려들자 이를 알게 된 황제는 밸런티노를 처형시켰습니다. 밸런티노가 처형된 날이 바로 서기 270년 2월 14일로 후세에 밸런티노를 기리는 사람들은 그를 사랑의 상징, 혹은 성자로 불렀답니다. 이 순교일이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전해진 것은 18세기에 초콜릿을 사랑의 묘약으로 여긴 카사노바로부터 유래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1400년경부터 발렌타인 데이를 지켜왔다고 하는데요. 역사가에 의하면 발렌타인 데이에 사랑의 글을 보내는 풍습이 1415년 영국에 포로로 잡혀간 프랑스 오를레앙의 공작 샤를르가 발렌타인 데이에 런던 탑 감옥에서 부인에게 사랑의 시를 보낸 데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런 낭만적인 글을 적어 보내던 풍습이 차츰 선물을 주고 받는 것으로 바뀌어 갔는데 1700~1800년 사이 상점에서는 발렌타인 데이에 연인에게 보내기 좋은 글을 모아 놓은 책을 팔기 시작했고, 이 무렵부터 발렌타인 데이를 위한 상품이 만들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선물로는 초콜릿이 많이 이용되었는데, 앞서 말한 빼빼로 데이는 90년대 중반 부산 및 경남지역 여중생들이 서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라는 의미에서 1이 네 번 겹치는 11월 11일에 가늘고 길쭉한 빼빼로를 주고받는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날씬해지기를 기원하며 시작됐던 빼빼로 데이는 현재 학생, 어른, 아이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국민의 이벤트 데이로 자리잡았습니다. 친구가 친구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자녀가 부모님에게.... 모든 이들이 참여하여 사랑, 우정, 감사의 마음을 나누는 날이 빼빼로 데이입니다. 사랑과 우정을 전하는 메신저 배로, 여러분도 빼빼로로 사랑과 우정을 나누어 보세요. 카사노바가 사랑을 유발시키는 묘약으로 애용한 것이 계기가 되어 초콜릿이 사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선물이 되었습니다.

초콜릿 기념일, 빼빼로 데이

빼빼로 데이는 90년대 중반 부산 및 경남지역 여중생들이 서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라는 의미에서 1이 네 번 겹치는 11월 11일에 가늘고 길쭉한 빼빼로를 주고받는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날씬해지기를 기원하며 시작됐던 빼빼로 데이는 현재 학생, 어른, 아이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국민의 이벤트 데이로 자리잡았습니다. 친구가 친구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자녀가 부모님에게....모든 이들이 참여하여 사랑, 우정, 감사의 마음을 나누는 날이 빼빼로 데이입니다. 사랑과 우정을 전하는 메신저 배로, 여러분도 빼빼로로 사랑과 우정을 나누어 보세요.